본문 바로가기

사랑방

가을 억새 -정일근

가을 억새      -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에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