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상해보라 ‘설렘 그순간’ / 김정운 | |
[한겨레 23돌] 행복 365 | |
[기고] 행복이란 무엇일까
삶이 재미없는 이들은 대부분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마어마한 재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재미는 없다. 설레는 일이 있어야 행복하고 재밌어진다. 어떠한 뛰어난 건축가도 개미의 건축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 개미가 집단으로 이뤄내는 건축물은 완벽하다. 그러나 인간이 개미보다 위대한 이유는 건축물의 완성된 모습을 머릿속에 먼저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독일어 원문을 쩔쩔매며 읽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 어딘가에 있는 내용이다. 행동을 하기 전에 목표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 심리학에서는 ‘행동’과 ‘행위’를 구별한다. 반사적 혹은 본능에 따른 움직임은 행동이고, 목적이 전제된 움직임은 행위다. 움직이기 전에 목적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목적과 상상력, 이 두 가지가 인간행위의 본질이다. 목적을 떠올리고, 그 목적을 향한 행위를 가능케 하는 그 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경험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심리학에서는 ‘모티베이션’(motiva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그러나 ‘모티베이션’은 아주 애매한 미국식 개념이다.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현대 심리학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여 측정하려는 방법론의 과학이다. 철학이나 미학 등과는 구별되는 근대학문으로서의 독자성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심리학은 ‘조작적 정의’라는 기막힌 개념을 찾아낸다. 추상적 개념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구체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모티베이션’ 혹은 ‘동기’로 번역되는 이 실행동력의 한국식 조작적 정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설렘’이다. 가슴이 뛰고, 자꾸 생각나고, 목표가 이뤄지는 그 순간이 기대되는 그 느낌을 우리말로는 ‘설렘’이라고 한다. 설렘이 있어야 상상 속의 목표가 구체화되고, 현실화된다. 설렘이 있어야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행복과 재미의 구체적 내용도 설렘이다. 설레는 일이 있어야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재미있으려고 산다. 한국 사회에는 행복과 재미를 이야기하면 한 급 아래로 내려다보는 어쭙잖은 엄숙주의가 존재한다. 자유, 민주, 평등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면 폼 나 보인다. 그러나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다.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물론 수단적 가치가 확보되어야 궁극적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유, 평등, 민주라는 조건이 이뤄진다고 자동적으로 사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진지하고 꾸준한 성찰이 있어야 수단적 가치도 이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행복과 재미에 관한 어떠한 사회문화적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사회에는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재미만 남아 있다. 딸 같은 걸그룹 허벅지나 아들 같은 아이돌 초콜릿 복근이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거다. 모여 앉으면 막장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하고, 허구한 날 정치인 욕하는 방식으로는 삶이 절대 흥미진진해지지 않는다. 폭탄주 마시며 룸살롱에서 아가씨와 아랫도리나 비비는 방식으로는 절대 즐거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설렘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구호로 삶이 행복해지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떠한 위대한 가치나 이데올로기도 내 삶에 구체적으로 경험되지 않으면 실천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지식인이 비겁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구체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삶의 구체적 경험이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다.
삶이 재미없는 이들은 대부분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마어마한 재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재미는 없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야 설레는 삶을 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한 주간 내 일상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된다. 내가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기억해내면 된다. 바로 그 일들이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들이다. 그 설레는 일들을 끊임없이 계획하며 살면 된다. 설렘이 없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한해가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설레라고….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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