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개털아비의 천국 김규항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였다. 이른바 이명박식 기독교 신앙이 판치는 한국에서 이 말은 그저 교회에 안 다니던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는 일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회개란 종교적 회심을 넘어 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회심을 뜻한다. 예수는 교회에 다닐 것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회개라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는 건 쉽게 말해서 ‘즐거움의 전복’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남보다 많은 돈을 벌고 여느 사람들과 삶의 외형적 격차를 벌리는 걸 인생의 즐거움으로 알던 사람이 한순간 벼락을 맞은 듯 가난한 사람을 보면 내가 많이 가져 저렇구나 싶어 민망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눈에 밟혀 그들과 함께 가는 게 훨씬 즐거운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 그게 바로 회개다.
예수가 그의 공생애의 첫 메시지로 회개를 말한 건 그가 전하려는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즐거움의 전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사회체제에서 살아갈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체제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된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극단적인 자본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돈과 외형적인 가치를 인생의 중심에 놓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즐거움이 전복되지 않는 한 사회 변화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무망하다.
오늘 반이명박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그 사실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그들과 이명박은 전혀 달라 보이며 실제로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반이명박 싸움은 이명박과 그들의 다름(이명박은 군사독재를 잇고 자신은 민주화 운동을 잇는다는 사실을 씨앗으로 하는)을 끊임없이 부각함으로써 이명박과 자신의 동일함(돈과 외형적인 가치를 인생의 중심에 두며 그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의 동일함)을 은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 그놈의 ‘내 안의 이명박’ 타령이군, 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이들은 행여 오해 마시라. ‘우리’의 이름으로 하는 비판을 자기성찰로 연결시키는 것은 지성의 기초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무슨 광야의 지사라도 되는 양 세상의 위선을 준엄하게 꾸짖거나, 제 이념을 확인하는 걸 목표로 삼는 공상주의자로서 비현실적인 넋두리를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잃어버린 인생의 참 즐거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할 뿐이다.
예수는 회개하라는 말과 함께 ‘하느님이 잔치를 열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즐거움을 전복하면 당장 천국에 들기라도 하듯 말하다니, 너무나 싱거운 말 아닌가 싶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더할 나위 없이 효성스런 자식 덕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던 부자가 어느 날 불현듯 생각한다. ‘내 자식이 나에게 이리도 잘하는 건 내 재산 때문이 아닐까?’ 그 부자는 그 순간 꼼짝없이 지옥에 입장한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개털 아비가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자식이 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우리 아버지가 가난한 이유는 그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개털 아비는 그 순간 천국에 입장한다. 우리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2010. 12. 09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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