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남자에게] 늙어 보이면 지는 거다! | |
식당에서건 카페에서건 내 친구 강영식은 여자만 보면 꼭 그런다. “아가씨, 얼굴에 뭐 묻었어요!” 당황한 여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묻는다. “뭐가요?” 영식이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름다움이…”
아, 정말 환장한다.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런 종류의 농담이라도 던져야 여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나이가 된 것이다. 문제는 다른 친구도 이런 종류의 ‘아저씨 유머’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평양에서도 이 유머가 통했다는 영식이의 무용담에 감동한 화식이, 응원이는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잔잔한 유머’가 필요하다며 수첩에 받아 적기까지 한다. 옛날 시골다방에서 쌍화차 한잔 시켜 놓고 어떻게든 ‘레지 아가씨’의 손 한번 만져보려던 할아버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내 친구들은 이렇게 급속히 늙어간다. 이제 아무도 늙어가는 것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포기하고 나니, 몸은 더 빨리 망가진다. 모두들 허리띠가 배꼽 위로 올라오는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뒤로 거의 자빠지듯 의자에 앉아 있다. 하는 이야기라고는 죄다 세상 못마땅한 이야기뿐이다. 가끔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많이 서글프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인상조차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나이 들어 보이는 만큼 일찍 죽는다는 사실이다. 실제 연구해 봤더니 그렇다는 거다. 최근 덴마크의 심리학자 크리스텐센(K. Christensen)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종단연구를 통해 같은 나이일지라도 늙어 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은 간단했다.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쌍둥이의 사진을 보고 나이를 평가하게 하고, 그 평가된 나이와 이 쌍둥이가 실제 사망한 나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2008년까지 약 225쌍의 쌍둥이가 사망했다. 숨질 당시의 나이를 비교해보니 쌍둥이 중 늙어 보이는 사람이 일찍 죽을 뿐만 아니라, 늙어 보이는 만큼 더 빨리 죽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안 좋으면 늙어 보이고, 그만큼 일찍 죽는다. 병에 걸려 몸이 아파 늙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왜 마음마저 일찍 포기하고, 손발 저리는 그 형편없는 ‘아저씨 유머’나 낄낄대야 하는가?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이유는 삶이 재미없는 까닭이다. 정력적으로 살던 이들이 은퇴한 뒤 갑자기 늙어버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은퇴한 뒤 더 빨리 늙는다. 존재불안의 우울함 때문이다. 우울한 사람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보통사람에 비해 2~4배나 된다고 한다. 특히 건강한 사람이 우울해질 경우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최근 나는 배꼽 위로 올라오는 ‘아저씨 바지’는 다 버렸다. 허리 아래쪽에 걸리는 청바지만 입는다. 불편해도 참는다. 머리에 파마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탈모로 엉성해진 머리 안쪽을 가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파마한 뒤 내 행동은 사뭇 과감해졌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옷도 사 입는다. 불과 몇 주 동안 역기와 아령을 들고는, 가슴 큰 남자들만 사 입는 쫄티도 사 입는다. 거울만 보이면 팔뚝에 힘을 잔뜩 준다.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산만한 잡지나 책도 사 본다. 악기나 그림을 배울 생각도 자주 한다. 어떻게든 재미있고 즐거운 생각만 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우울하고 허전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한순간이다. 방심하면 한방에 ‘훅’ 간다. 우리 나이에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내 인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파마하기 전과 파마한 후.
아무튼 난 영식이가 하는 ‘아저씨 유머’ 따위는 죽을 때까지 절대 안 할 거다. 악착같이 젊고 건강하게, 아주 오래 살 거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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