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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 & 건축

집에 대한 어느 목수의 깨달음(퍼온 글)

예전에 글이 너무 맘에 와 닿아 갈무리해 둔 겁니다.

집과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이 거의 득도의 수준이라고 해야하나???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고들 허지. 옳은 말이여.

주인이 오며 가며 살피는 논밭이랑 주인이 돌보지 않는 밭이랑은 금방 표가 나는겨.


옛날에 5.16인가 허구 나서 새마을 운동하기 전에는 촌구석에도 도박꾼들이 많았구먼.

일년 벌어서 겨울에 한 한달 어느 집 사랑방에 모여 노름 하고 나면 일년 농사 거덜났지.

그때 그런 말이 있었구먼.

"남정네 노름에 빠지면 그집 마누라보다도 논이 먼저 안다고..."

암 논밭이 먼저알지. 그래서 밭고랑이가 트고.....곡식이 타죽고.. 땅이 영물이여.


사람은 땅을 거스르면 안되야.

요즘 집짓는 것들 보면 옛날 못먹고 못산거 한풀이 하듯 참 잘들도 짓대.

허지만 ..그럼 땅이 죽어.

왜 사람 사는 집을 살림집이라고 하는 줄 알어?

왜 집에 들여 놓는 세간살이를 살림살이라고 하는 줄 알어?


땅을 살리고, 오만가지 생명들을 살리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살리니까 살림집이여...

그래서 세간이 살림살이여.

요즘 짓는 집덜언 살림집이 아니여.


내 소시적에는 집모양을 생각하고 땅을 보는게 아니고.

땅을 먼저 보고 집 모양을 생각 했구먼...

지붕은 산에 어울리구...우물은 개울에 어울리고...뒷간은 거름더미를 생각해야 되고....그래야

살림 집이구먼....

요즘 처럼 너두 나두 뾰족지붕에 허연 벽바르면... 안되야...

그건 땅을 거스르고 ....종내 땅이 죽는 구만....

황토집 짓는다고해도 수천리 떨어진 동네서 퍼다지으면 안되야. 그럼 그땅이 싫어허는구만...

돌많은 동네선 돌로 짓고 ...흙좋은 동네선 흙으로 짓고, 춘양목 나는 동네는 춘양목으로 짓고 그러는 거여.


주인이 집짓는다고 집터에 흙과 낭구를 천대하면 안되야...

한해곡식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는데......항차 수십년 낭구는 어떻겄어?

땅이야 말헐 것두 없고..

집은 정답이 없는겨..합각지붕(팔작지붕, 일반적인 한옥 형태)이 좋은 터가 있고....

맛배지붕(박공지붕)이 좋은 터가 있어..


초가지붕처럼 둥그런 지붕은 쩌그 충청도처럼 산이 야트막한 땅에 좋지...

뾰족한 지붕은 강원도처럼 산이 삐죽삐죽한 땅에 좋고..

산에 지붕이 눌려도 안되고. 지붕이 산이랑 싸워도 안좋은겨.

물이랑 산은 싸우는 법이 없어...산이 나스면 물은 물러서고..물이 나스면 산이 물러서지...

그래서 구비구비 그렇게 유구장창 서로 얼싸안고 흐르는겨....

집도 마찬가지지..산이 드세면 집터를 물리고 ..물이 드세면 산으로 옮겨 붙고..그러게 터를 잡는겨.


정지(부엌)하고 꿀뚝은 바람의 방향을 보고 자리를 잡아야 혀, 그리고 나서 고래를 놓는겨....

그래야 불을 다스리지...


마당은 푹꺼지면 안좋아.....집이 덜렁하니 너무 올라가도 안좋고.....

대문은 길에서 반듯허니 올리되 대문 지붕은 집 추녀 보다도 낮아야혀...

그래야 집안이 답답하지 않구만.


바람이 센 터는 돌담을 쌓고....밖에는 탱자 낭구 같은 걸 심으면 좋지....


집 뒤에 산이 있으면 대나무밭을 만들어 놔야 혀....

대나무 밭은 항상 서늘 허니 바람이 불고....대나무 밭이 마르니께.....

산에서 물이 나도 대나무 밭은 못건너 오지...

대나무는 낭창낭창해서 산에서 흙이 무너져도 집은 들 상해...


집터가 축축해서 벌거지들이 많으면 천궁이 당귀를 심으면 좋아....

벌거지들은 한약 냄새를 싫어 하거던....당귀는 집 마당에 뱀이 드는 것두 막아 준다더만.


옛날 목수들은 집만 짓는게 아니라....이런 것 오만가지 잡스러운 것까지 다챙기면서

지었구먼....그리고 집 주인 한데 잔소리를 많이 했지...테레비 맹근놈이 테레비 젤 잘알고,

집 맹근 놈이 그집 젤 잘아는겨.

그래야 땅에 어울리고 사람을 살리지.

집 지을때 주인이 잔소리 많이 하는 집은 다지어 놔도 집꼴이 안되야.

허긴 집짓는 도적놈들이 하도 많으니...안할수도 없을겨....

그래도 집주인이 좋은집 지을라면....한가지 더 아는 것 보다는 ..한번 들 나스는게...

더 낳구먼...


내 소싯적에 지은 집중에 하나는 집터가 가뜩이나 쫍지레한데...집터에 큰 돌배 나무가 있었어....

터가 좁다보니 이놈이 지붕추녀에 걸리는 거야.

그렇다고 그것도 생명인디 벨수도 없고 해서 바람드는 쪽 지붕은 합각 지붕으로 해서 추녀를 길게 빼고...

돌배 나무있는 쪽은 그냥..

맛배지붕으로 짓고 나무는 그냥 냅뒀드니...배꽃이 피면 아주 좋았어...

덕분에 어린 애 주먹만한 돌배가 열면...그집 쥔은 그걸 따다가 술을 담갔지..

내가 집일 할때는 집지은 뒤에도 한이태는 문짝은 맞는지 어디 덧나지는 않는지...

일없을 대 찾아가 보는데..그때 마다 그쥔이 그술을 내왔지..기가 막혔어.

그집은 지금도 있을걸...


집에서 젤루다가 중한건 우물이여.

개울에서 넘 멀리가면 물이 안나.

넘 가차이 가면 장마때 흙탕물이 들지...

요즘에야 ..기계가 좋아...워낙 깊이 파니께....상관없는가 몰라도...

우물에 물맛이 좋은 집이 살림도 펴더만...


여튼간에...집터를 거슬르고 지으면 안되야...

집주인은 사람이지만....땅주인은 사람이 아닝게.


“요즘 집들 보면 말여..집이 너무 억세단 말이시.

서울에 아파트만 억센게 아니고.....논두렁에 지은 집들도 하나같이 억세게들 짓드만...

그리고 뭔 산위에 ..뼝때 위에 ...그렇게 엄청시런 집들이 지어대는지 원...

물가차이에도 많이 짓고.......그런데 지을라믄 세멘주추를 한참 높여야 되거던.


내가 일 배울때는 말여..

지기가 사나운데는 집터가 아니라고 배웠거든.

내가 지관도 아니고 풍수도 모르지만서도...한 40년 일댕기다 봉께..터가 쪼매 뵈는데...

산이 아부지면 물은 어무이라....그사이에 깃드는 집은 자식새끼쯤 되겄제..


산과 물이 너무 멀리 있어도 안되지만 너무 가차이 있어도 안되야..

물하구 산은 서로 친해야허구..여간 해서 싸우는 법이 없지만도....

산허구 물이 너무 가까이 있으믄 잘못하믄 싸운단 말이시...

물하고 산하고 가까이 있으믄 뼝때(벼랑,절벽의 강원도 사투리)가 안생기든가?..

요즘 설 사람들은 그런데를 경치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인디...

옛사람들은 그런데 정자는 지어도 살림집은 안지었거든....놀기는 좋아도 살기는 그른터다 이거지...


뼝때가 있는 땅은 어무이 아부지가 싸우는 땅이라...

물이 산더러 저리 비키라 하고...산은 어데 덤벼봐라 하고..바위로 칼을 갈아세운 형국이라 이거지...

자고로 부모 금슬 안좋은 집안에 효자 없고, 선비 없는것이여.

그런 터는 자연 지기가 사나워지고 사람한데도 안좋단 말이여.

그런데다 집을 지을라믄 집을 억세게 지으야 되는디..

그러믄 점입가경이라..부모는 서로 싸워쌓고, 자식은 부모 못 믿겠다고 지 주장을 내세우는 꼴이 되거던..

지기가 사나운 땅에서는 사람이 편할 수 없는 것이여.


안동 하회 땅이 왜 명당인줄 아는가?.

그 땅은 수천 수 만년을 싸워서 이제는 서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화평한 땅이라...

다 늙어..서로 불쌍한 줄 알고..서로 챙겨주면 의지해 사는 노인 부부 같은 땅이라....

땅이 화평하니 그 터에서 좋은 인물들이 얼마나 많이 났던가?

좌청룡 이니 우백호니..주산이 어쩌니 조산이 어쩌니 ...그전에 질로 중요한 거슨 ..땅이 화평해야 하는기라..

물 허구...땅 허구의 쌈이 끝난 땅이 좋은 기라.

지기가 사납고...경치가 좋은 땅에는 어쩌다 한번 바람 쐬러 댕기는 땅이지 ..사람살 땅이 아닌기라..

왜 옛날 장수들이 그런데로..무술하고 사냥하러 다녔겠노?...

다 그땅헤 험하고 사나운 지기를 지가 받아서...용맹한 장수 될라는 기라....

그런데 그런땅에 살림집이 있으믄..집안이 화평하지 않고...식구들 성정이 억세지는 기라...

맨날 앙칼진 돌방구만 보고사는데 ,..안그렇겠드나?

땅이 서로 잡아 묵을라고 으르렁대는 땅에 사람이 편케 살수 있겠나...집터가 억세면 ..집을 억세게 지어야 되고..  종내는 사람이 억세지는 기라."


요즘 그래도 좀 깬 사람들은 세멘 집보다도 나무집 흙집들을 많이 짓대.. 좋은 일이여.

허지만 이 사람들도 말하는 거슬 보믄 기가 찰 일이 있는디...

말끝마다..부석사가 몇 년 됐네...대궐이 몇 년 됐네 한단 말이시...

대궐 대들보가 봉화 땅 춘향목이네, 어디 땅 먼 나무네 해쌓고...

지도 거그 가서 그 나무 사온다고 나대고...


그거 보믄 내가 기가 차는데.....

내가 파리 얘기 하진 않았는가?

왜 사람이 개주인인가도 말했구...

자고로 주인노릇 할래믄 지가 거느리는 것은 지보다 목심 질기게 만들 필요 없구만..

개가 사람보다 들 사는 거야 하늘이 정한 이친데...

다 늙은 개 정들었다구 ..하루라두 더 살릴라구...병원 델구 댕기구

돈쓰는 거 보믄 한심 한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갈때는 뒷끝없이 가야 ...이쁜기라..그기 잘산기라.

나도 살날 을매 안남았다만도 늙어서 안죽겠다고 발부둥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고.

갈사람 미련스럽게 안보낼라고 악착시리 붙잡는 것도 않좋은기라.

그래서 도를 통하믄 지 죽을때를 안다고 하는기라.


집도 한가지다.  엣말에 그런말 있제?..

사람없는 집에 먼지 더 잘 앉는다구...

촌구석에 버려논 옛날 집은 한 이태만 지나면 ..폭삭 무너져 앉아.. 풀나고..곰팡이 쓸고..

그래서 흙이 안되더나...그기 집이라..


잘 지은집 못 지은집 없이 사람살때 편안코.. 사람 안살때는 흙이 되는기 그기 순리라.

옛날 잘 지은집 입에 올릴거 없는기라...

왜 대궐을 강원도서 나무 갖고 오고..변산에서 돌가꼬 와서 그리 엄청시리 지은줄 아나?

그거는 세상이치 거스르면서라도..즈그 집안이 자자손손 임금 해묵을라는 욕심 때문인기라..

그때야 백성보다 즈그 사당 ..뭐라카노 ..그래 맞다 종묘...그기 중한게..

오래 오래 천년만년 가라고 지은기라...

테레비에서 옛날 얘기 할 적에 맨날 백성얘기는 안하고...종묘니 사직이니 안하드나..


허지만도..그거 짓는라고 백성들은 을매나 등꼴 빠졌겠노....

울 할아버지도 경북궁 짓는다고 ..여그 봉화땅에서 잡혀가서 ..소식 없다 안 들었나.

대궐에 그 고래등같은 용마루에는 그때 빠진 백성들 등꼴이 줄줄이 걸려 있는기라...

그래서 거그 사는 임금들은 대대로 손이 귀하고 대가 그리 잘끊기는 기라...강화도령이라는 말도 않있드나?


절집은 왜그리 오래가게 잘짓는중 아나?

사람 목심이야 잠시 잠깐이지만도 부처님 가르치심이야...만고 불변인게...

그 가르침 담는 집은 오래가야 되는기라. 그기야 절에 중들 잘묵고 잘살자고 짓는거 아이다.


우리처럼 무지랭이들은 좋은 집 나쁜집 없는기라...

그저 배불리 먹고 살거 나오는 터, 한귀퉁이에...누우면 맘 편한 집한간이면 되는기라..

진짜...좋은 집은 몇자 기둥에 무슨 기와에 달린게 아이고 맘 편한 집이 좋은 집인기라....

나쁜 집은 허름하다고 나쁜기 아이고..남에거 훔치고, 빚내서 지어 가꼬... 두고 두고..장리 빚 갚느라 사람 허리 휘게 하는게 나쁜 집이라...

지돈 있어 좋은 집 짓는 거야 지맘이다 만서도.....

분수 모르고 욕심으로 지은 집은 ...집이 아니라 짐이다.

사람 살리는 집이 아니라..죽이는 집이다.


좋은 집 찾을 거 하나 읍다...

하룻밤 자보이...내 서울 사는 아파트 보다 편하다..그라믄 좋은 집이라..


집은 옷이라..

옷이란 거는 더운믄 벗고....추으믄 껴입고 그라믄 된다...

좋은 집은 짓기 쉽고...누우니 편하고....비안새고 ...건사하기 편하고.....돈필요해 팔 때 잘 팔리고.....

썩어야 할때 잘썩고..그라믄 좋은 집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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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니 이 촌구석에 내려온다고..빚내가꼬 돈지랄 하믄 그날로 발모가지 뒤틀어 서울로 보내 삐린다." 였습니다.